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호 전차 티거 (문단 편집)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dXP0QhbBDC8)]}}}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boq824ER0DY)]}}} || || '''현존하는 유일한 동태보존 티거인 티거 H1형 131호차의 기동 영상''' || >우리 전차병들은 티거 전차의 성능에 완벽히 만족했으며 우리 보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 전차를 가지고 [[독소전쟁|동부전선]]과 [[서부전선#s-3|서부전선]]의 힘겨운 방어전투에서 살아남았다. 전쟁에서 살아남아 평화를 누리는 티거 전차병 출신이라면 마땅히 이 '명품 전차'에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 >------ >- [[오토 카리우스]] [[중위]], 자서전 '진흙 속의 호랑이' 中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개발/운용한 [[중전차]]. 정식 명칭은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H1 (6호 전차 H1형)이었으나 1943년 3월 대대적인 개량을 거친 티거들은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E(6호 전차 E형)으로 명명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식 명칭보다는 Tiger I[* 독일어로 티거 아인스라고 읽으면 된다. 티거란 별칭을 붙여준 사람은 [[페르디난트 포르셰]]다.], 티거(타이거), 곧 [[호랑이]]라는 별칭으로 불렀고 1944년 2월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으로 정식명칭에 Tiger가 들어가서 Panzerkampfwagen Tiger Ausf. E가 됐다. 형식번호상 6호 전차라곤 하지만 [[5호 전차 판터]]보다도 앞서 개발되고 배치됐기에 대전 후기에 대세를 탄 경사장갑이 아니라 전통적인 대전 초기 독일군 전차의 특징인 수직방향 장갑을 채택하고 있다.[* 이런 외형 탓에 오버로드 작전 등에서 연합군이 티거와 조우했다는 보고 중 상당수는 스커트 장착 개수를 받아 비슷한 실루엣을 가진 [[4호 전차|4호 H/J형]]이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g.hobbycom.jp/original_image.jpg|width=100%]]}}} || || '''1943년 1월 모스크바 고리키 공원에 전시된 극초기형 티거를 살피는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와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 1942년 초반에 생산을 개시하여 1942년 9월 23일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첫 데뷔하게 된다. 총 4대가 투입되었으나 초기불량 문제에 소련군의 화망에 걸려 전부 주저앉아 버리는[* 3대는 회수, 1대는 폭파 처리했지만 완파되지 않았고 그 한대를 소련군이 확보하면서 귀중한 연구 자원으로 활용하게 된다.] 굴욕을 겪는다. 투입된 전장도 소련군이 이미 정조준하고 노리고 있는 좁은 곳인데다가 티거에게는 걸맞지 않은 늪지대나 연약지반이 많아서[* 공차중량이 약 60톤이나 될 정도로 장난아니게 무거운 전차다 보니 진창에 한번 제대로 빠지면 기동불능 상태가 되버리기 때문.] 이렇게 영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때의 경험으로 티거는 몇 가지 결함이 수정되며 운용교리가 정립된다. 하지만 티거의 진가가 드러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42년 12월 20일, 튀니지의 레조 디 칼라브리아 항구에 도착하여 [[북아프리카 전역]]에 투입된 티거를 장비한 1942년 5월에 창설된 제501중전차대대는 이미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군이 밀리는 상황에서 부대 자체도 티거를 완편 장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2개 중대만이 티거를 배치받았고 나머지는 [[3호 전차|3호전차 N형]]으로 편성되었다.] 11월 8일에 알제리로 상륙한 미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고 이후 3월 13일에 추가로 지원온 504중전차대대 1중대가 합류되면서 5월 17일까지 150여 대의 미군 전차를 날려버리더니 카세린 전투에서 미1기갑사단을 격파하며 10대의 피해만 입는 대활약을 펼쳤다. 독일 아프리카 군단이 항복할 때까지 티거는 총 7대의 전투손실을 입었으며 그동안 300대가 넘는 영연방군과 미군의 전차를 격파했다.[* 출처: Christopher W. Wilbeck, Sledgehammers: Strengths and Flaws of Tiger Tank Battalions in World War II.] 티거의 볼썽사나운 데뷔전을 기록했던 502중전차대대는 1942년 말부터 계속된 레닌그라드를 해방시키려는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내며 독일 중전차 대대 중에서도 특출난 활약으로 수백 대의 소련군 전차를 날려버리며 이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거기다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선 중대 단위로 투입된 티거가 하르코프 북방에서 펼쳐진 소련군 기갑부대의 반격을 분쇄해내며 티거의 위력을 톡톡히 보였고[* [[미하엘 비트만]]이 티거 에이스로서의 능력을 처음 보인 게 이때였다.] 여기서 티거는 설원에서의 기동전까지 수행해 내는 능력을 보였다. 한 예로 이 무렵 티거 2대가 [[T-34 전차]] 수십여 대와 교전하여 16대를 격파하자 나머지 소련 전차들이 후퇴하기 시작했지만 이들을 추격하여 18대를 추가로 격파했다. 그리고 전쟁 중반기 이후 각 전선의 독일군이 패퇴하던 무렵에도 노련한 전차병의 경험과 맞물려 다대한 전과를 기록했다. 티거는 대전기간 내내 우수한 방호력과 화력, 전술기동력으로 승무원들을 지켜주며 무수히 많은 전차 에이스들을 배출했다. [[쿠르트 크니스펠]] 최소 168대 이상 격파[* 단, 1944년부터는 티거의 후속작인 [[티거 II]] 중전차를 지급받고 최후까지 전투를 치루었다.], [[오토 카리우스]] 최소 150대 이상 격파, [[요하네스 뵐터]] 139~144대 격파[* 1944년 전투 도중 부상으로 훈련소 교관으로 활동하다 종전을 맞이한다.], [[미하엘 비트만]] 138대 격파, [[알베르트 케르셔]][* 오토 카리우스의 중대 소속으로 카리우스가 가장 신뢰한 전차장이다.] 최소 100대 이상 격파 등, 티거는 100대를 넘는 격파수를 찍은 에이스를 14명 이상 배출했다. 보다 많은 티거 에이스들의 기록은 이 [[http://www.alanhamby.com/aces.shtml|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하다. 물론 그렇다고 무적의 전차까지는 아니었다. 특히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연합군도 티거의 유명세만큼이나 대응책을 고민했기 때문. 서부전선에서는 M4셔먼의 76mm HVAP탄은 논외로 치더라도[* 76mm T4/M93 HVAP 탄은 1944년 말에야 시험적으로 전차당 1~2발씩만 지급됐고, 1945년 2월에서야 제식 채용돼 대량 보급됐다. 티거의 전장 데뷔는 1942년, 생산 종료는 1944년 8월(45년 4월까지 생산기록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건 신규생산 종료 후 파손된채로 회수된 티거의 부품을 조합해 만든 재생 차량이다. 일명 좀비 티거. 얼마전까지 하이브리드 티거와 혼동되었으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산된 차량.), 그리고 독일이 항복한 유럽 승전 기념일이 1945년 5월 8일이다.], 76mm M62 피모철갑탄이나 M79 경심철갑탄에는 900야드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면 관통될 위험이 있었고, 측면이 노출될 경우 그보다 더 먼 거리에서도 뚫릴 위험이 높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90mm 대전차포]] 혹은 그것을 장비한 [[M36 GMC]]는 원거리에서도 17파운더보다 더 정확하고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영국의 경우 [[17파운더|17 파운더 대전차포]]나 그것을 장비한 [[셔먼 파이어플라이]] 경우는 명중률로 까이는 APDS 말고도 그럭저럭 쓸 만한 명중률을 보인 APCBC탄으로도 멀리서 티거를 거꾸러트릴 능력이 있었다. 동부전선으로 가면 [[SU-85]]와 [[T-34-85]]의 85mm APCR이 근거리에서 티거의 정면을 관통 할 수 있었고 [[IS-2]], [[ISU-122]]의 122mm는 중거리에서, [[SU-100]]의 100mm는 장거리에서도 티거를 잡을 수 있었다. [[SU-152]], [[ISU-152]]의 주포이며 일반 [[견인포]]로도 사용된 [[152mm ML-20]]은 실전에서 맞추기는 어렵지만 명중만 시킬 수 있다면 곡사포의 무지막지한 고폭탄의 위력 때문에 티거의 차체도 뭉개트릴 수 있다.[* 152mm 고폭탄 직격이면 현대의 3세대 전차조차도 전투불능 확정이다.] 더불어 운용하는 지휘관이나 승무원이 미숙한 판단을 내릴 경우 502중전차대대의 볼썽사나운 데뷔전만 되풀이 될수 있음은 덤이다.[* 독일군은 중전차 대대를 구성해 독립적으로 운용하며 여기 배속된 전차병들은 탑승한 전차를 손실하거나 부상을 입어 후방으로 후송을 가야 하는 경우가 아닌 한 보직이 변경되는 일이 드물어 상대적으로 전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승무원들이 많았다. 물론 신규 편성되는 중전차 중대의 경우 3호나 4호를 타다 옮겨오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돌격포를 타다 전입해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티거는 중전차대대로 독립적으로 운용되었다.) 후에 506 중전차 대대 4중대로 배속된 둥키르헨 구원 임무 중전차 중대도 첫 실전에서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다가 1량의 티거를 완전 손실 당했다.] 물론 독일은 이 시점에서는 더 우수한 방어력의 [[티거 II]]나 판터로 생산라인을 변경하고 있었다. 티거의 자세한 내·외부 모습을 보고 싶다면 [[보빙턴 전차 박물관]]의 131호 차량에 대한 시리즈가 참고할 만하다. [[https://youtu.be/_JhKTKsdlB8|인트로]] [[https://youtu.be/zngycQmFhhQ|외부]] [[https://youtu.be/OPuuLlc80Rs|정비]] [[https://youtu.be/Vmgd3KBIE0U|내부(차체)]] [[https://youtu.be/q3JRx4PkDYg|내부(포탑)]] 영상이 상당히 알차고, 특히 쉽게 보기 힘든 티거의 자세한 '''내부''' 모습과 각종 세세한 디테일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시리즈이니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보다보면 정말 세세한 부분에서 신경을 많이 쓴 전차라는 것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